약간은 아쉬운 책《생각만하는 사람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팡세>의 서두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하였다. 인간이 생각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이상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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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인간 행위의 첫 단계라고 한다면 두 번째 단계는 행동일 것이다.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따라서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성과를 얻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결국 거기서 소위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받아 들게 된 <<생각만하는 사람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 역시 제목에서 풍기는 향기는 이런 행동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런 행동력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자기계발 서적이 굉장히 많이 있다. 게다가 상당히 얇은 두께에 부담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임팩트 있는 한마디랄까, 핵심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상식선에서 내용을 풀어쓰며 과학적인 배경을 근거로 들어 신뢰도를 주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선이 약간 애매하다. 우선 표지에서 “생각을 원하는 대로 반드시 실현하는 뇌과학적인 방법”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길래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책인 줄 알았는데, 과학 냄새가 나는 전문용어는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
일본 서적 특유의 난해한 문체도 있었다. 일본 서적을 번역한 서적을 읽다 보면 어색한 기분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일상 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적어도 우리나라 책들에서 쉽게 찾아 보기 힘든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예로 들면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공헌” 이라는 절이 있었다. 공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드라마를 보면 ‘공헌’이라는 단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한자를 섞어 쓰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책의 경우도 일본 서적을 번역하다 보니 그대로 가져다 쓴 것 같았다. 또 일본어에서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 이런 느낌은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음을 양해 바란다. 일어를 접한 경로가 애니메이션 밖에 없으니.. ㅜ ) 이 책에서도 역시 ‘어퍼메이션’, ‘마이 페이스 뇌’ 같이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표현이 있었다. 뭐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이런 단어의 사용이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이질감은 책으로의 집중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마지막으로 혹평을 하자면 책의 컨텐츠의 구성에 있다. 책을 쓸 때 핵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고 그 주제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앞 뒤로 적절하게 글을 배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집중을 하지 못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구조가 그려지지 않아서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라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정보 하나하나는 재미있고 믿음이 가는데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짜임새 있게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책을 다 읽고 나서 돌아보니 머릿속에 남은 게 없었던 것이다. ( 혹은 내 머리가 나쁜 걸 수도 있지만.. )
또 ‘뇌 과학’ 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으면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독자를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시를 들었지만 ‘뇌 과학’이라는 단어가 갖는 기대감을 만족 시킬 만큼 과학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얻은 게 전혀 없지는 않았다. 특히 중간에 독서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되었다. 우선 요즘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들을 무조건 머릿속에 집어 넣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속독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독서라는 것은 정보를 받아들여 기억을 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새로운 지혜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컴퓨터는 인간보다 정보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우월하다. 물리적으로 하드디스크만 계속 추가해준다면 인간을 상회하는 기억력, 게다가 기억되어 있는 정보를 복원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이 컴퓨터가 아닌 인간을 고용하는 것이다. ( 심지어 컴퓨터는 전기만 먹고, 파업 같은 것도 안 한다. ) 따라서 독서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단순 정보가 아닌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사고력이다. 그런 점에서 본질적인 독서가 추구해야 하는 독서법은 속독법이 아니라 슬로리딩인 것이다.
《생각만하는 사람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에서는 슬로리딩과 더불어 보텀업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에 남을 대작들은 하나같이 어렵다. 저자가 평생을 연구하고, 얻어진 지식과 지혜를 집대성 해놓은 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연구를 할 때, 그 분야의 대가가 지은 어려운 책을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그 책을 풀어 쓴 책을 먼저 읽고 그 다음 원본을 읽는 방식을 취하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보텀업 독서는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기 전에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으면 왜 마키아벨리가 당시 그초록 냉혹한 군주의 논리를 펼칠 수밖에 없었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기 전에 <그림으로 보는 사기>를 먼저 읽는 식이다.
물론 쉽게 풀어 쓴 책을 읽은 후에 반드시 원형이 되는 책을 읽어야 의미가 있다. 책에서는 멋진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시카고 대학 철학과 교수 모티머 아들러는 보텀업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꿀이 달콤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맛보지 않으면 설탕의 달콤함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설탕과 꿀은 모두 달콤하다. 하지만 설탕의 달콤함은 건조하고 화학적이다. 반면에 꿀에는 입속 깊이 스미는 달콤함이 있다. 꿀은 삼키고 나면 은은한 기운이 남지만, 설탕은 삼키고 나면 자극만 남는다. 쉽게 요약한 책을 읽고 원형을 읽지 않는 것은 설탕만 맛보고 꿀의 맛을 설명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멋진 표현과 과학적인 뒷 받침이 있는 책이지만 구조적인 문제와 번역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색함이 있어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하지만 책이 작은 여러 개의 파트로 잘 나뉘어 있어 틈틈이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얻는 것이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