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해피엔딩> 김연수, 김중혁 - 그래도 해피엔딩
이전에도 몇 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저는 읽을 책을 고를 때, 남이 추천해주거나 읽으라고 주는 책 아니면 대부분 제목에서 오는 필을 믿습니다. ( 물론 그러다가 망한 케이스도 몇 번 있지만요 ㅎ ) 이번 책도 누가 추천하거나 어디서 들었다기 보다는 제목에서 오는 느낌에 이끌려 첫 장을 펴게 된 케이스입니다.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라... 영화나 드라마에는 두 가지 엔딩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잘 되어 훈훈하게 끝나는 해피엔딩과 주인공이 죽거나 해서 비극적으로 마무리가 되는 새드엔딩이 그것인데요. 각각 매력이 있고, 의도적으로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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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라고 말하기도 하는 우리내 인생을 두고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을 때, 새드엔딩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분은 정말 우울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 결국 우리는 대책이 없더라도 해피엔딩을 바라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제목이 저를 이 책으로 팍팍 이끌었습니다. 저 역시 제 인생은 어찌 됬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 게다가 표지의 색도 하늘색으로 맑은 느낌을 주는게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 대꾸 형식의 영화 에세이
이 책을 읽어보니 <시네21> 이라는 잡지에 두 명의 저자가 기고를 한 칼럼들을 묶어낸 글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저자인 김중혁씨와 김연수씨가 각각 일주일씩 번갈아가면서 쓰는 형식의 "대꾸" 에세이였는데, 다른 글과 다르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주 분량의 칼럼을 쓰면서 내용을 전개하면 다음 주에 다른 사람이 그 내용에 대꾸를 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는데, 저자 특유의 유머가 녹아 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더군요.
한사람씩 일주일을 할애 받아서 칼럼을 기고하는 방식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만담이라고 해야 할까요? )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지난주에 했던 친구의 말을 재치있게 받아치고, 우스갯 소리를 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글 참 잘 쓴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글에 유머가 묻어나고,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배우고 싶은 글 솜씨를 가진 두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멋진 말, 멋진 글들..
원래 책 읽으면서 메모 같은거 잘 안하는데,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워낙에 길다보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영화관련 글이다보니 읽는데 시간이 오래걸리더군요. 제가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 안보는 편이어서요 ㅜㅜ ) 몇 군데 표시를 해 놓고, 기억하고 싶은 표현, 말들을 적어 논 것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내가 그런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를 표면 그대로,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무시하는 예술가들의 진심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돈을 무시하는 한 그들은 진실을 말하게 돼 있으니까.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 나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초딩의 표정으로 곧이곧대로 내러티브를 따라가다가 끝내 울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 대책없이 해피엔딩 中 25 ~ 36 쪽 -
요즘 예술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돈입니다. 영화를 보아도 상업적인 영화와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분리해서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음악을 논하는 자리, 특히 가수를 논하는 자리에서 돈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 가수와 진짜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려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술과 돈... 진정성... 어렵습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진정성이 나오려면 돈에 초월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수가 진짜 노래를 부르려면 돈에 상관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고, 블로거가 진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것과 결별을 해야 진짜 좋은 블로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술과 돈의 관계는 아마도 저를 비롯한 우리세대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논의가 될 주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예술가는 결국 굶어 죽어야 인정을 받는 것인지...
볼 만한 사진 한 장은 5메가바이트다. 들을 만한 음악 한 곡을 파일로 만들면 8메가바이트 정도다.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파일로 만들면 1기가바이트가 넘는다. 그러나 장편소설 한권을 파일로 만들어도 1메가바이트를 넘지 않는다. 아무리 길게 써도 도저히 넘길 수 없다. 불공평하다. 어떻게 쓴 글인데, 억울하다.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회사에 제안한다. 문서파일의 크기를 적어도 5메가바이트보다 크게 만들어주세요. 시 한 편만 써서 파일로 만들어도 5메가바이트를 넘게 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쓴 장편소설 넘기려고 하는데요, 파일이 너무 커서 첨부파일로는 보낼 수 없겠네요. 무려 10기가바이트도 넘어요. 대용량 파일로 보내거나 외장하드를 퀵서비스로 보내거나 해야 할 것 같아요. 파일이 이렇게 큰 걸 보면 얼마나 거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 만하지요? 하하하"라는 실없는 농담을 출판사에다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 대책없이 해피엔딩 中 95 쪽 -
인터넷이 일반인에게 보급이 되고, 너도나도 인터넷에 글을 쓰는 시대가 되면서 텍스트가 천대받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게 되면 십중팔구는 이미지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 실제로 네이버의 경우 멀티미디어 자료가 많으면 검색 랭킹에 가산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자연스레 글로 꽉찬 컨텐츠들은 외면을 받고 눈에 딱 들어오는 이미지나 동영상 위주의 글이 환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저자는 용량에 비유를 한 것 같은데요. 잘 쓰여진 소설 하나가 5메가 바이트, 디카로 찍은 사진 두 세장 정도의 용량밖에 안된 다는 것... 그 만큼 텍스트가 천대 받고 있는 세상을 꼬집은 것처럼 보입니다. ( 저자가 꼬집지 않다면 제가 꼬집겠습니다. )
이 밖에도 몇몇 군데 정말 멋진 표현과 멋진 생각이 담긴 글이 있었는데, 2MB의 용량도 안 되는 것 같은 제 기억력과 적자생존( 적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 )에서 살아 남지 못 할 정도로 적는 습관이 안 되어 있는 제 습관 탓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편이 읽다가 "올ㅋ" 할 정도로 멋진 글이 나옵니다. ^^
▶ 곳곳에 그려져 있는 재미있는 그림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그림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자분들이 영화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재미를 더하고자 그림이 추가되어 있는데, 아마도 저자분들이 직접 그림에 출연하시는 것 같습니다. ( 실제로 저자분들이 어떻게 생기셨는지는 찾아 보지 않았습니다만, 저 그림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
아무튼 읽기에 불편하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보지 않은 영화들이 좀 많이 있어서 내용을 따라가고 공감을 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뭐 영화 잡지에 기고를 한 칼럼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 일까요? )
▶ 곳곳에 숨어 있는 시사 비판
2009년 대한민국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9년, 잡지에 기고된 글이라서 그런지 영화이야기 구석구석에 시사 비판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前 대통령이 몸을 던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실에서부터 촛불시위에 대한 이야기까지...
유머와 풍자를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을 잘 담아낸 것 같아 좋았습니다. 통쾌하게 비꼬고 조롱을 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차마 옮겨 적지는 못 하겠네요. ^^
아무튼 읽는데 비교적 오래 걸린 책이지만 잘 안 읽히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