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정태련, 이외수 지음 - 삶의 단비


<남자의 자격>, <1박 2일> 등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익숙한 작가인 이외수 선생님의 작품인 《아불류 시불류》를 읽었다. 우아함이 느껴지는 문체, 속속이 녹아있는 유머 감각이 멋진 책이었다. 일상에서 잠깐 잠깐 든 생각, 짧은 사색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아불류 시불류》는 읽는 사람에게 정신적 휴식을 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아불류 시불류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시각적인 자극보다 후각적인 자극이 먼저 왔다. '향기나는 책'. 《아불류 시불류》를 펴자마자 향기로운 꽃 냄새가 어디선가 느껴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맡으며 글을 읽으니 이 향기가 종이에서 나는지 글에서 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불류 시불류




《아불류 시불류》이외에 이외수 선생님의 책, 글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부끄럽게도 아직 이외수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본 일이 없어서 이 책이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참 소박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화천이라는 시골에 살면서 조용히 사시는 모습이 머리속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이 묻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내 고향이 화천인데, 이외수라는 작가가 내려와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외수 선생님의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그 분의 생각을 TV를 통해 조금씩 보면서... 또 이번 《아불류 시불류》를 읽으면서 존경스러운 생각의 세계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불류 시불류




향기나는 종이, 향기나는 글과 더불어 소박함이 묻어나는, 향기로운 그림이 덧붙여져 있다. 대부분 화려한 꽃이 아니라 이름 모를 야생초, 길거리를 가다가 우연히 봤을 것 같은 풀 들의 그림이 있었다. 이 책과 딱 어울리는 그림들이 향기나는 글에 더욱 더 깊은 시각적 향기를 더해 주었다.




아불류 시불류




《아불류 시불류》에서 인상 깊었던 글귀를 뽑아보자면,



행복해지고 싶으신가요. 계절이 변하면 입을 옷이 있고 허기가 지면 먹을 음식이 있고 잠자기 위해 돌아갈 집이 있다면, 마음 하나 잘 다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 p.18


어떤 문장에는 이빨이 있고 어떤 문장에는 발톱이 있다. 어떤 문장은 냉소를 머금고 있고 어떤 문장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고 글 한 줄로 천생연분을 맺는다. 글은 자신의 품격을 대신한다. - p.27


파리가 먼지에게 물었다. 넌 날개도 없는데 어쩜 힘 하나 안 들이고 그토록 우아하게 날 수가 있니. 먼지가 대답했다. 다 버리고 점 하나로 남으면 돼. - p.43


따귀를 맞더라도 명품시계 찬 손으로 맞고 싶어요 -- 된장녀. - p.46


쌀 앞에서 보리는 끝내 잡곡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허기진 자의 뒤주 속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 p.95


느티나무는 향기로운 열매나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열 살만 넘어도 지나가는 행인들이 쉴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가지를 내어준다. 그런데 마흔이 넘도록 남에게 피해만 끼치는 인간들은 워따 쓸거나 잉. - p.105


예술이 밥 먹여주느냐는 헛소리로 예술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을 겁주지 말라. 전 세계를 통틀어 밥을 먹기 위해 예술을 선택하는 멍청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니. - p. 149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내 소설보다 몇 배나 기상천외하구나. - p.181




아불류 시불류




이 책에는 323개의 가볍지만 깊이 있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하나하나를 소설 책 읽듯이 주욱 읽어가는 식으로 읽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생각을 하루에 2, 3개씩 곱씹어보는 식으로 읽는게 좋을 것 같다. 한 번 읽고 책 장을 장식하는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책에서 나는 향기가 사라질 때까지 읽고 또 읽어 보는게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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